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영화정보
  •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 1958
  • 미국
  • 로버트 와이즈
예고편
스틸컷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감상평 1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나무를 심은 사람
40년 전에 나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어내린 알프스 산지의, 여행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지대로 장거리 하이킹을 하였다. 프로방스 고지의 알프스 지역과 드롬의 남쪽 부분과 보끌뤼즈의 조그마한 분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나는 그 빈 땅에서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가 3, 4천 피트 높이까지 뻗어있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야생의 라벤다나무 말고는 아무 것도 자라고 있지 않았다. 사흘 동안 걸은 후에 나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황량한 장소에 도달하였다. 나는 버려진 마을의 폐허 옆에 천막을 치고 물을 찾으려 했다. 다 무너져 가고 있었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래된 집들이 과거에는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사실 샘이 있기는 했지만 다 말라버렸다. 비바람에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진 예닐곱 채의 집과 종각이 무너진 작은 교회는 살아있는 마을의 집과 교회처럼 모여 앉아 있었지만 생명이라고는 그곳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해가 빛나고 있었지만 하늘을 가린 것이 없는 이 높은 황무지에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유월의 맑은 날이었고
바람이 차고 거칠었다. 바람은 껍질뿐인 버려진 집에서 먹이를 빼앗긴 짐승같은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다섯 시간을 더 걸은 후에도 물을 찾지 못했고 물을 발견할 희망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똑같은 메마르고 거친 관목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때 저 멀리에 검은 모습이 조그맣게 서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나는 그것이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라고 생각하고 별 목적도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양치는 사람이었다. 서른 마리 가량의 양들이 그 사람 주위의 메마른 풀밭에 쉬고 있었다. 그는 호리병박의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해주었고,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깊은 자연우물에서 물을 길었는데-그 물은 정말 맛있었다-우물 위에 조잡한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별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자립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헐벗고 황량한 장소에서 그를 만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집은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지은 조그만 가옥이었고, 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발견한 폐가를 어떻게 고쳤는지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지붕은 든든했고 비를 막아 주었다. 벽돌에 부딪치는 바람은 해변이 파도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의 집은 정갈하였다.
접시는 씻겨져 있었고 바닥은 쓰레질이 되어 있었으며 총에는 기름칠이 되어 있었다. 화덕에는 그의 저녁식사가 김을 내고 있었다. 나는 또 그가 면도한지 얼마 되지 않으며 옷은 어찌나 잘 수선되어 있던지 고친 것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고 단추 하나도 떨어지거나 느슨하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저녁을 나와 나누어 먹었고 식사 후에 내가 담배를 권하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인처럼 조용한 그의 개는 사람에게 아양을 떨지 않았고 순했다. 다음 마을은 아직도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날 밤을 그의 집에서 보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양치는 사람은 작은 자루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다 도토리 한 무더기를 쏟아내었다. 그는 조심스레 하나씩 조사를 해서 상한 것과 온전한 것을 가려내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그것은 자기의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것이 모두였다. 성한 도토리를 상당히 큰 무더기가 되게 골랐을 때 그는 열 개씩 세어서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또 아주 작은 것이나 약간 금이 간 것들을 골라내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날 저녁 늦게
 
그는 계속해서 도토리를 자세히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 개의 완전한 도토리를 골라내고 나서 그는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은 아주 평화로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에게 그의 집에서 하루 쉬어도 되겠는지 물었다. 그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아무 것도 그를 성가시게 할 수는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실은 정말로 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내어놓고 풀을 뜯게 데리고 갔다.
집을 떠나기 전에 그는 그렇게나 조심스레 골랐던 도토리가 든 자루를 물통에 담갔다가 꺼내었다. 그는 지팡이로서 남자의 엄지손가락 굵기에 4피트 가량 되는 쇠막대기를 가지고 갔다. 나는 슬슬 산책을 하는 사람 같은 태도로 그가 가는 길과 나란히 걸었다. 그의 양은 골짜기 아래에서 풀을 먹고 있었고 그는 양을 지키도록 개를 남겨두고 내가 서 있는 비탈을 올라왔다. 나는 그가 내 호기심을 나무래려나 하고 겁이 났지만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일이 없으면 자기와 같이 가자고 청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가 가는 길이 그쪽이었고 내가 달리 할
그는 비탈의 꼭대기까지 2백 야드를 더 올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쇠막대기로 땅에다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도토리를 하나 넣고 흙으로 덮었다.
그는 도토리 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 땅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아니오 하고 그는 말했다. 땅 주인이 누군지 아는가? 아니, 그는 몰랐다. 그는 주인이 누군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백 개의 도토리를 아주 조심스레 계속 심고 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그는 또 도토리를 골랐다. 내가 좀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도 그는 기꺼이 자세히 대답을 해주었다. 3년 동안 그는 이 외로운 곳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는 도토리 10만개를 심었는데 이중에서 2만개가 뿌리를 내렸다. 그 2만 중에서 절반은 작은 동물이나 예측할 수 없는 일로 없어져 버릴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 전에는 나무라고는 없던 곳에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가 남아서 자랄 것이다.
 
일도 없었으므로 무언가 하기로 결심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 제서야 나는 그 양치는 사람의 나이가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쉰 다섯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이름은 엘지아 부피에였다. 그는 평지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나뿐이던 아들을 잃었고 그러고나서 아내도 잃었다. 그는 물러나 외롭게 살아가기로 하였고 양들과 개를 데리고 조용히 사는 것이 좋았다. 그는 그 지역이 나무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고 바삐 해야 할 다른
나는, 앞으로 30년 후면 이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가 굉장한 숲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30년 동안에 그가 굉장히 많은 나무를 더 심어서 지금 뿌리를 내린 만 그루의 나무는 바다에 물 한 방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소박하게 대답했다. 그는 또 너도밤나무를 키우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집 가까이에 너도밤나무 열매로 싹을 틔우는 묘목장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어린 나무들은, 양들이 다치지 않도록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또 골짜기 바닥에는 자작나무를 심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의 말로는, 지표에서 1, 2피트만 내려가면 흙 속에 물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그곳을 떠났다. 그 다음해가 1차세계 대전의 시작이었고 나는 5년간 군복무를 하였다. 군인은 나무 생각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실 그 일은 나에게 그리 큰 인상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해로울 것 없는 취미정도로 보았고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나는 약간의 제대비도 받았고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다른 아무런 생각없이 나는 그 외로운 고지대를 향했다. 그곳은 변하지 않았다.
같은 것이 멀리 보였다. 바로 전날부터 나의 생각은 나무를 심던 양치는 사람에게 행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러나 버려진 마을 너머로 더 높은 땅 위에 베일처럼 드리워진 일종의 회색 안개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는 정말 상당한 땅을 차지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5년 동안 나는 하도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엘지아 부피에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스무 살의 젊은이는 쉰 살이 넘은 사람을 죽는 것밖에 남은 일이 없는 늙은이로 생각하였으니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아주 정정했다. 그는 직업을 바꾸었다.
양은 네 마리 밖에 없고 백 통의 벌집을 가지고 있었다. 양들이 나무 심는 일에 위협이 되어서 양들을 없애버린 것이다. 나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전쟁이 있은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나무심기를 계속해왔다. 그가 1910년에 심은 도토리나무들은 이제 10년이 되었고 우리보다 키가 더 컸다. 그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거의 말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의 숲 속을 말없이 거닐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고 가장 넓은 지점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그 모든 것이 현대기술의 도움도 없이 그의 생각과 한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할 때 나는 인간이 파괴가 아닌 문제에서는 하느님만큼이나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생각을 실천하였다. 눈길이 미치는 곳까지 뻗어있는 어깨높이의 자작나무가 그 증거였다. 도토리나무는 굵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고 이제는 작은 동물들에게 피해를 입을 염려가 없었다. 섭리라고 하더라도 큰 폭풍이나 불면 모를까 그 밖의 어떤 일로도 이제는 그 성취를 파괴할 수는 없었다. 그는 1915년, 내가 베르뒨에서 싸우고 있던 때에 심은 5년 된 건강한 자작나무 무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그는 골짜기의 바닥을 덮어놓았는데 그곳에는 그가 옳게 짐작한 대로 거의 지표높이에 지하수면이 있었다. 그 나무들은 사춘기의 부드러움과 생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업은 연쇄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만 똑바로 계속하고 있었다.
마을로 가는 길을 다시 따라가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언제나 말라 있던 개울에 다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씨앗을 흩어 놓았다. 개울이 다시 소생한 것처럼 버드나무, 갈대, 목초지, 정원과 꽃 그리고 어떤 삶의 방식이 다시 소생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주 서서히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고 쉽게 적응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러나 나는
 
토끼나 멧돼지를 쫓아서 고지대로 올라가 본 사냥꾼들은 어린 나무들이 새롭게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자연의 변덕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무도 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면 누군가가 그 일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누가, 마을 사람이거나 관리이거나 간에
그러한 굳건한 헌신을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
1920년 이후로 나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엘지아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가 자기의 노력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의심을 보이는 것을 나는 한번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내가 그의 실패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성공을 위해서는 그가 역경을 극복해야 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가 마음에 그렇게나 깊이 품은 일을 훌륭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절망과 싸워야 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어느 한해 동안에 그는 단풍나무 씨앗을 만개 이상 심었는데 그것이 모두 죽었다. 그 다음해에는 너도밤나무를 심었는데 그것은 도토리나무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그의 예외적인 성품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 그가 오직 혼자서만 일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만년에 가까워서는 그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 1933년에 삼림관리인이 놀라서 그를 찾아갔다. 이 관리 양반은 그에게 " 자생한 " 숲의 성장을 위협할 염려가 있으니 집 밖에서는 불을 피우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다. 그 높은 분의 말로는 숲이 혼자서 자라난 일은 도대체 처음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 부피에는 자기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너도밤나무 열매를 심고 있었다.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덜기 위해서-그는 그때 일흔다섯이었다-그는 나무를 심고 있는 곳에 돌로 오두막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해에 그 일을 했다. 1935년에 진짜 정부 조사관들이 이 " 자연의 숲 "을 보러왔다. 삼림국의 "대단히 중요한 분"도 있었고 국회의원 한사람과 여러 명의 전문 기술자가 있었다. 별 내용은 없이 연설이 행해졌고 무슨 일인가 해야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행하게도 그 숲을 국가의 관리하에 두기고 하고 숯굽는 일을 금지하는 쓸모있는 조처를 취한 것밖에는 아무 일도 행해지지 않았다. 그 건강한 젊은 나무들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하지 않았다. 삼림전문가중의 한사람이 내 친구였는데, 나는 그 신비로운 일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한 주일 뒤에 우리는 엘지아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는 조사관들이 찾아간 곳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데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 삼림관리는 내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고, 언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선물로 가져온 달걀 여섯 개를 부피에에게 주었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걸어다녔고 몇 시간을 조용히 경치를 바라보며 보냈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는 18-20피트 높이의 나무로 된 숲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1913년에 헐벗은 황무지였던 그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를 회상했다. 조용하고 꾸준한 노동, 기운을 북돋우는 고지의 공기, 검소한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그 노인에게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천부의 원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숲을 그가 만들어낼까 하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내 친구는 그 땅에서 아마도 잘 자랄 것 같은 수종에 대하여 간략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내 친구는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 그가 나보다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라고 친구는 말했다. 한시간을 더 걸은 후에 그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 그 사람은 그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어. 그는 행복해지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거야. "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새로운 삼림지대와 부피에의 행복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 친구 덕분이었다. 세명의 삼림감시인이 지명되었고 내 친구가 그들에게 아주 강력한 지시를 해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숯굽는 사람들의 뇌물과 아첨을 알은체하지 않았다. 그 일은 오직 제 2 차 세계대전 동안에만 위협을 받았다. 차량은 그 당시 가솔린으로 운행하였고 나무가 부족했다.
1910년에 심은 도토리나무들에서부터 벌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숲이 길에서부터 너무나 멀어서 그 일은 수지가 맞지 않아 중단되었다. 그 양치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는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서. 나는 그를 1945년 6월에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때 그는 여든 일곱살이었다, 나는 벌거벗은 황무지였건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이 남긴 상처에도 불구하고 듀란스 계곡에서 언덕들 위로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나는 전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하고 있으므로 전에 걸어서 지나다녔던 곳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버스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을의 이름을 듣고서야 한 때 황량했고 폐허였던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베르뇽에서 버스를 내렸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1913년에 열두 채 정도의 집이 있던 이 촌락에는 사람이라고는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주위의 버려진 집들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공기마저도 달라졌다. 건조하고 휘몰아치던 바람은 향기를 실은 부드러운 미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다의 웅얼거림 같은 소리가 산비탈로부터 들려왔다.그것은 나무들 사이를 부는 바람소리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제대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은 것이다, 새로운 샘이 있었는데 인색하게 쫄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또,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가까이에 보리수가 한 그루 심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한 4년간 튼튼하게 자란 것이었으며, 부정할 수 없는 재생의 상징이었다. 베르뇽 마을은 희망의 분위기가 없었더라면 시작될 수 없었을 새로운 노력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희망이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폐허는 정리되고 무너진 담은 치워졌고 회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다섯 채의 새 집이 있었다.
 
그 집들마다 뜰이 있었고 그곳에는 뒤섞여 있긴 해도 질서있게 꽃과 채소들, 장미와 양배추, 금어초와 부추, 아네모네와 샐러리 등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곳은 이제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부터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막 끝난 전쟁이 새로운 생명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그러나 생명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낮은 경사지에는 보리와 호밀을 심은 밭이 아직 푸른 채 있었고 좁은 골짜기에는 신선한 초록색 풀밭이 있었다.
있다. 마을은 점차로 다시 건설되었다. 땅이 비싼 평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젊음과 활동과 모험의 정신을 가져왔다. 오솔길에서는 건강한 남녀들을 만날 수 있고 시골 잔칫날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한 아이들의 쾌활한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훨씬 더 편해졌으므로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그전의 주민들과 새로 온 사람들을 합쳐서 일 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엘지아 부피에 덕분에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 사람이 혼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성에 의해서 황무지를 평화와 풍요의 땅으로 꽃피울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인간의 성품이 찬양할 만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 이르는 대 필요했던 꾸준하고 너그러운 정신과 헌신을 생각하면 나는 하느님이 이루실 만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 글자도 모르는 시골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엘지아 부피에는 1947년에 바농에 있는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 후 겨우 8년이 지난 지금 그 지역 전체가 풍요롭게 번성하고 있다. 폐허가 있던 곳에는 이제 잘 가꾸어진 농장이 있어 만족스러운 안락한 생활의 증거가 되고 있다. 오래된 샘들은 비와 나무들이 머금고 있던 눈 녹은 물로 다시 흐르고 있고 개울은 쓸모가 있도록 만들어진 수로로 흐르고 있다. 농가 옆에는 단풍나무 숲 속에 샘이 솟아 신선한 박하풀이 양탄자처럼 자라고 있는 곳으로 흘러들고
- 장지오노의 < 나무를 심은 사람 > 에서 -
 
나비를 잡는 아버지
 
현덕 현덕 :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고무신」이 입선하고,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집을 나간 소년』,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 등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황혼의 종로로 방향을 돌려서
버스는 떠난다. 경쾌하게.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건드러진 노랫소리가 푸른 언덕을 넘어온다. 바우는 송아지를 뜯기며 밤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 그리는 책을 펴 들었다. 송아지가 움직이는 대로 자리를 옮아 앉으며 옆으로 풀을 뜯는 송아지 모양을 그리느라 열심히 들여다보고 연필을 놀리고 하더니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흥!” 하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한번 웃고는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그 편에 등을 대고 돌아앉는다.
‘겨우 서울 가서 공부한다고 배워 가지고 온 것이 유행가 나부랭이냐. 그리고 나비 잡는 것하구.’
지난 해 봄에 바우와 경환이는 한날에 그곳 소학교 소학교 : 지금의 초등학교. 보통학교.
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경환이는 서울로 상급 학교를 가고 바우 자기는 집에서 꾸벅꾸벅 땅이나 파며 있지 않으면 아니 될 때, 바우는 무척 슬퍼하고 억울해 하고 따라서 경환이를 부러워도 하였다. 바우 자기가 값없이 보내는 그 하루하루에 경환이는 좋은 학교, 훌륭한 선생 아래서 날마다 새로워 가고 높아 갈 것을 생각할 때 바우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상급 학교에 가지 못하는 벌충 벌충 : 모자란 것을 다른 데서 보태 채우는 것.
틈 있는 대로 그림을 그리었고 또 그것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을 여기다 하려는 듯이
그리고 얼마 전에 그 경환이가 하기 휴가 하기 휴가 : 여름 방학
를 하고 서울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전보다 얼굴빛이 희어지고, 바지 통이 넓은 양복에 흰 테두리한 모자를 멋있게 쓴 것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경환이는 서울이 얼마나 좋고 자기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훌륭한 곳인가를 자랑했다. 거기다 활동 사진 활동 사진 : 영화.
배우 중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쩌고, 그리고 잡된 유행가를 부르며 동네 어린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나비를 잡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아마 경환이 자기는 이러는 것으로, 전일 보통학교 때 늘 바우에게 성적으로 머리를 눌려 오던 분풀이를 하려는 듯이 뻐기며 다니는 것이다. 바우에게는 그 꼴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떠난다. 가로수 그늘.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꽃 피는 남산으로 방향을 돌려서 버스는
 
노랫소리는 점점 가까워 온다. 그리고 잠시 언덕 너머가 떠들썩하더니 호랑나비 한 마리가 피로한 나래로 갈팡질팡 날아와 밤나무 가지에 야트막하게 앉는다. 바우는 그 나비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깐 그 호사스런 모양, 찬란한 빛깔을 들여다보다가 도로 날려 보내려 할 즈음, 언덕 위로 동네 아이들의 머리가 불쑥불쑥 나타나며 뒤미처 경환이가 나비 잡는 채를 휘두르며 뛰어내려 온다. 경환이는 바우가 앉아 있는 밤나무 그늘로 들어서며,
“너, 호랑나비 어디로 날아가는 거 봤니?”
하고는 바우 손에 잡혀 있는 나비를 보고는 반색을 한다.
다우.”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나
하고 으레 줄 것으로 알고 손을 내미는데 바우는 그 손을 툭 쳐 버리고 몸을 돌린다.
“넌 무슨 까닭으로 어린애들을 몰고 다니며 앰한 앰한 : 아무 잘못이 없는. 애매한.
나비를 못살게 하는 거냐?”
“뭐?”
바라보고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경환이는 뜻하지 않은 말에 잠시 멍하니
“누가 장난으로 잡는 거냐. 학교서 숙제를 냈어. 동물 표본을 만들어 오라구.”
“장난 아니믄, 벌써 너 나비 잡기 시작한 지가 며칠이냐. 그동안에 못 잡아도 백 마리는 잡았겠구나. 그거 다 동물 표본 만들고도 모자라서 또 잡는 거냐?”
“모두 못쓰게 잡았으니까 그렇지. 날개가 상하구.”
하다가는 경환이는 변색을 하고 한 발자국 다가서며,
상관이냐, 건방지게.”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넌 남이 나빌 잡건 말건 무슨
“나두 상관할 만해서 그런다.”
“무슨 상관야.”
“너 때문으로 해서 담부턴 나비 구경을 못하게 되겠으니까 허는 말이다.”
하고 바우는 경환이 얼굴을 마주 노리다가,
만들기에 나비가 필요하다면 난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나비야. 너만 위해서 생긴 나비는 아니지.”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니가 동물 표본을
그러나 경환이는 “흥!”하고 코웃음을 친다. 바우는 한층 음성을 높여 계속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잡된 유행가는 너 왜 가르치는 거냐. 부르고 싶으면 네가 부르지.”
이 말엔 매우 괘씸한 모양, 경환이는 낯을 붉히며 대든다.
“이 동네서 나 하는 거 시비할 사람 없어. 건방지게 왜 이래.”
마름 : 땅 임자와 그 땅에 농사짓는 소작인 사이에서 땅 임자 일을 대신하는 사람.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는 그 말속엔 분명 자기는 마름
집 외아들로서 지위가 높은 몸, 너 같은 소를 뜯기는 놈에게 시비를 받을 몸이 아니라는 빈정거림이 있다. 바우는 썩 비위가 상해서, “흥!” 하고 마주 코웃음을 치고 그리고 좀 더 골을 올리려고 두 손가락에 날개를 접어 쥔 나비를, ‘이것 너 줄까.’ 하는 시늉으로 경환이 등을 향해 두어 번 겨누다가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나비는, 방향이 없이 어지러이 한 바퀴 맴을 돌더니 언덕 아래로 높았다 낮았다 날아간다.
경환이는 갑자기 몸을 날려 그 나비를 쫓아간다. 그러다가 나비가 아래 논 가운데로 날아가자 뒤돌아서 바우를 무섭게 한번 눈을 흘겨보고, 그리고 돌 하나를 집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송아지를 때리고는 언덕 아래로 달아났다.
그러나 경환이의 심술은 이것만으로 고만두지 않았다.
 
전까지의 바우 집 식구들의 식량을 거기다 예산하고 있는 것이요, 바우 자기도 잘 열면 책 한 권쯤 사 달라려고 벼르고 있던 터다. 바우는 나는 듯 개울을 건너 뒤로 쫓아가 한 번 등줄기를 우리고 우리고 : 힘껏 때리고.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송아지에게 먹을 만치 풀을 뜯기고 언덕 아래로 몰고 내려와 수수밭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바우는 다시금 놀랐다. 개울 건너 바우네 참외밭에서 경환이란 놈이 나비 잡는 채를 휘두르며 날뛰고 있다. 그까짓 송장나비를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 텐데 경환이는 그 나비를 쫓아 구두 신은 발로 지금 한창 참외가 열기 시작하는 넝쿨을 함부로 질겅질겅 밟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 나비를 잡는 척 참외밭으로 몰아넣고 침외 넝쿨을 결딴내는 것이리라. 바우는 눈이 뒤집혔다. 더욱이 그 참외밭은 장차 햇곡식 나기
나서,
“임마, 눈 없어? 이거 못 봐?”
하고 낭자한 그 자취를 손으로 가리키며,
“넌 남의 집 농사 결딴내두 상관없니, 임마.”
경환이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러나
“우리 집 땅 내가 밟았기로 무슨 상관야.”
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 ‘피이.’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러나 사실 기가 막히기는 바우다.
“우리 집 땅?”
쳐다보고 탄식하고,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허 참.’ 하늘을
“땅은 너희 집 거라두 참외 넝쿨은 우리 집 거 아니냐. 누가 너희 집 땅을 밟는대서 말야? 우리 집 참외 넝쿨을 결딴내니까 말이지.”
그러나 경환이는 머리에 썼던 운동 모자를 벗으며 한 발자국 다가선다.
“너희 집 참외 넝쿨은 그렇게 소중히 알면서, 어째 남이 나비 잡는 건 훼방을 노는 거냐. 나두 장난으로 잡는 건 아냐.”
“장난이 아닌지는 몰라도 넌 나비를 잡는 거고 우리 집 참외 넝쿨은 거기서 양식도 팔고 팔고 : 사고. 곡식을 사는 것을 판다고도 한다.
그래, 나비가 중하냐, 사람 사는 게 중하냐.”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래야 할 것이거든.
바우는 팔을 저어 시늉하며 어느 것이 소중하냐고 턱을 대는데 경환이는,
“나두 거기 학교 성적이 달린 거야.”
하고 ‘피이.’ 하고 업신여기는 웃음을 짓더니,
“너희 집 집안 살림을 내가 알게 뭐냐.”
아이들이 모여 서 있고 그 뒤로 지게를 진 어른들도 서 있다. 바우는 낯이 화끈 달았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같은 웃음으로 좌우를 돌아본다. 개울 건너 길가에 동네
“뭐, 임마.”
하고 대뜸 상대의 멱살을 잡고,
“그래서 남의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 나빈 우리 집 참외밭에만 있구, 다른 덴 없어, 임마.”
경환이는 멱살을 잡히고 이리저리 목을 저으며,
다 그랬어.”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이게 유도맛을 보지 못해 이래. 너 다 그랬니.
하고 으르다가 날래게 궁둥이를 들이대고 팔을 낚아 넘겨 치려 하나 원체 나무통처럼 버티고 섰는 바우의 몸은 호리호리한 경환의 허릿심으로는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바우가 슬쩍 딴죽을 걸고 밀자 경환이 자신이 쿵 나둥그러졌다. 그러나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설 때 경환이는 손에 돌을 집어 들고 그리고 얼굴에 울음을 만들고는,
“이 자식아, 남 나비 잡는 사람, 왜 때리고 훼방을 노는 거냐. 왜.”
하고 비겁하게 돌 든 손을 머리 위로 쳐들어 겨누는 것이다. 결국 이때껏 아이들 등 뒤에 입을 벌리고 서서 보고만 있던 동네 어른 하나가 성큼성큼 개울을 건너와 사이를 뜯어 놓았다. 그리고 경환이를 참외밭 밖으로 이끌어 나간 것으로 끝났으나, 경환이가 손목을 이끌려 가면서 연해 뒤를 돌아보며,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던 그 말이 허사가 아니었다.
바우가 자기 집 장독간 앞에서 벌통을 들여다보고 앉았는데 경환이 집에서 부엌 심부름을 하는 계집아이가 왔다. 바우는 까닭없이 가슴이 성큼했다.
“바우 어머니 집에 있수?”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계집아이는 안방과 부엌을 기웃거리다가 마당에 섰는 바우를 보고,
“너 우리 집 서울 학생 때렸니?”
하고 쳐다보다가 대답이 없으니까,
“너, 야단났다. 우리 집 아씨가 막 역정이 나서 너의 어머니 불러오래, 얘.”
말을 하고 함께 문 밖으로 사라졌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마침 우물에서 돌아오는 바우 어머니를 보고 계집아이는 다시 한번 그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하면서 바우는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일없이 뒤꼍으로 갔다, 마당으로 나왔다 하며, 어머니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조마조마해한다.
먼저 아버지가 뒷밭에서 돌아왔다. 이맛살을 찌푸린 얼굴로 아버지는 기색이 좋지 못하다. 호미를 마당 가운데 던지더니 아버지는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참외밭에서 누구하구 싸웠니?”
돌아앉아서 말이 없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바우는 벌통 앞에
“너두 눈 있거든 참외밭에 좀 가 봐. 넝쿨 하나고 성한 게 있나. 임마, 그 밭에 도지 도지 :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도조.
가 얼만지 아니? 벼로 열 말야. 참외는 안 돼두 낼 것은 내야지. 그리고 허구한 날 먹을 건 먹어야지. 그런 걱정은 없구, 임마, 참외밭에서 싸움이 뭐냐, 싸움이.”
바우는 벌통 앞에서 일어서며 볼멘소리로,
“누가 싸웠나, 경환이가 나빌 잡는다고 참외밭에서 막 넝쿨을 밟길래 말린 거지.”
음성을 거슬렸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러나 아버지는 한층
“내가 뭐랬어. 참외밭 근처서 멀리 떠나지 말고 지키랬지. 그놈의 그림책 이리 내놔라. 그 것만 잡고 앉았으면 정신없다가 참외밭을 결딴내는 것두 몰랐지, 임마.”
하고 그 그림책을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고 뒤꼍으로 가며 아버지는 혼잣말로 서울 가서 공부한 것이 나비 잡는다고 남의 집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고 중얼중얼 울타리에서 호박잎을 따고 있다. 아마 부러진 참외 넝쿨을 그것으로 이어 보려는 것이리라. 조금 후 아버지는 호박잎을 따 가지고 나오며,
“너의 어머니 어디 갔니?”
그러나 바우는 경환이 집에서 어머니를 불러 갔다는 말은 아니 나왔다. 묵묵히 바우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아도 좋았다. 바로 그 어머니가 상기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섰다.
어머니는 다짜고짜로 바우에게로 달려가 등줄기를 우리고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자식이 어떻게 했으면 어미 망신을 그렇게 시키니. 어서 나비 잡아 가지고 가서 빌어라, 빌어.”
그리고 아버지를 향하고는,
“당신도 가 보우. 바깥사랑에서 부릅디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하여 바우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일야, 응.”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어떻게 된
그러나 어머니는 바우를 향해서만 또,
“남 나빌 잡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지 어줍잖게 왜 다니며 훼방을 노는 거냐.”
“누가 훼방을 놀았나. 남의 참외밭에 들어가 그러길래 못하게 말린 거지.”
“아, 니가 밤나무 골 언덕에서 손에 잡았던 나비까지 날려 보내며 뭐라구 그랬다는데 그래.”
그리고 바우가 나비를 잡아 가지고 와서 경환이에게 빌지 않으면 내년부턴 땅 얻어 부칠 생각을 말라더란 말을 옮기며 또 바우에게,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리고 어머니는 경환이 집 안주인이 꾸중꾸중하더라는 것,
“어서 나비 잡아 가지고 가서 빌어라, 빌어.”
아버지는 연해 끙끙 땅이 꺼지는 못마땅한 소리로 뒷짐을 지고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무섭게 눈을 흘겨 바우를 본다. 그리고 바우는 어머니가 등을 미는 대로 부엌으로 뒤꼍으로 피하다가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담 밑에 붙어 서서 움직이지 않는 바우를 어머니는 쫓아나와 다조진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안 가면 어떡헐 셈이냐. 땅 떨어져도 좋겠니. 너두 소견이 있지.”
그러나 바우는 어슬렁어슬렁 길로 나가더니 우물 앞 정자나무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동네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앉았는 것을 넋을 놓고 들여다보고 섰다. 장기가 두 캐가 끝나고 세 캐가 끝나고 모였던 사람이 헤어져도 바우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바우는 다만 자기가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그러니까 누구에게든 머리를 굽힐 까닭이 없다는 고집이 정자나무통만큼 뻣뻣할 뿐이었다.
내려다보고 섰는데 등 뒤에서 아버지 음성이 났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해가 저물었다. 지붕 너머 집 굴뚝에도 연기가 오르고 그리고 그 연기가 졸아든 떄에야 바우는 슬슬 눈치를 살피며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건넌방 쪽에 눈이 갔을 때 바우는 크게 놀랐다. 아궁지 앞에 위하던 그림 그리는 책이 조각조각 찢기어 허옇게 흩어져 있다. 바우는 그 앞에 이르러 멍청히
“임마, 남은 서울 학교 다녀서 다 나비도 잡고 그러는 건데 건방지게 왜 다니며 훼방을 노 는 거냐, 훼방을.”
그리고 바우가 그림 그리는 것과 그것은 아랑곳없는 일일 텐데 아버지는,
“담부턴 내 눈앞에 그 그림 그리는 꼴 보이지 말어라. 네깟 놈이 그림 그걸루 남처럼 이 름을 내겠니, 먹고 살게 되겠니.”
하고 돌아서 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며 아버지는,
“나빈 잡아갔지?”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다져 묻는다. 바우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하다. 아버지는 기가 막힌 듯 잠시 건너다보기만 하다가 언성을 높였다.
“이때껏 나가서 뭐 했어. 임마, 간 봄에 늙은 아비가 땅 얻어 부치느라고 갖은 애 다 쓰던 것을 네 눈으로도 보았지. 가뜩한데 너까지 말썽일 게 뭐냐. 어서 가서 빌지 못하겠어.”
아버지는 담뱃대 끝으로 바우의 수그린 머리를 찌를 듯 겨눈다. 그러는 대로 바우는 무춤무춤 피할 뿐 조금도 걸음을 옮기려지 않는다.
“그래도 네 고집만 셀 테냐. 그럴라거든 아주 나가거라. 아주 나가.”
이런 때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그걸 빼앗아 던져 버리고,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가서 빌기만 허면 뭘 하우. 나빌 잡아가야지. 그리고 지금은 어두워서 잡겠수. 내일 잡아 가라지.”
그리고 어머니는 바우의 등을 밀며,
“어서 올라가 저녁이나 먹어라.”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며,
그래.”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저런 놈 저녁은 먹여 뭘 해. 아주 내쫓으라니깐
하고 자기가 먼저 문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는 그 아버지가 들어오기 전에 어서 저녁을 먹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바우는 섰는 자리에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가 달랠수록 더 짜증만 낸다. 한종일 아버지, 어머니에게 애매한 미움을 받고 또 그림책을 찢기고 한 그 억울한 감이 가슴 속에 벅차 다른 무엇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다. 건넌방 모퉁이서 바우는 아버지와 얼굴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어제와 다름없는 그 얼굴 그 음성으로 부엌에서 아침을 짓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오늘도 저놈이 제 고집만 세우고 나빌 잡아가지 않거든 밥 주지 말어.”
그리고 바우를 향해서는,
허지, 그러지 않으려거든 영 집에 들어올 생각 말어라, 임마.”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오늘은 나빌 잡아가지고 가 봐야
그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자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와 작은 음성으로 바우를 달랜다.
“아버지 속상하시게 하지 말고 오늘은 나빌 잡아가지고 가 봐라. 땅이 떨어지거나 하면 너는 좋겠니. 생각해 봐라.”
바우는 여전히 말이 없다. 어머니는 그것을 바우가 순종하는 뜻으로 여긴 모양, 부엌에서 아침을 차리기에 분주하였다.
“얼른 밥 차려 줄게 먹고 나가 봐.”
자기네 요구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바우는 무척 야속했다. 노여웠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러나 바우는 어머니가 밥상을 날라 오기 전에 자기가 먼저 슬며시 집 밖으로 나갔다. 밥을 열 끼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경환이 앞에 나비를 잡아가지고 가서 머리를 숙이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아들의 그만한 체면쯤 보아줄 줄 모르고
바우는 동구 밖 아랫마을로 가는 길가 축동, 버드나무 그늘 밑을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며 걷는다. 아침부터 요란스레 매미는 울고 그리고 속상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풀 위로 너훌거리는 나비다. 바우는 그 나비를 피해 가는 듯 문득 걸음을 바꿔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바우는 일상 하던 버릇으로 풀을 베어 널고, 그 위에 벌렁 나둥그러져 하늘을 쳐다본다. 집에서보다 갑절 어버이에게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사무친다.
‘아버지 말대로 정말 집을 나오고 말까. 그러면 아버지도 뉘우칠 때가 있겠지. 그리고 서울 같은 도회 가서 어떻게 고학이라도 해 볼까.’
바우는 정말 그렇게 해 볼 것처럼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걸음 걸리는 대로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간다. 산 중턱쯤 이르렀다. 건너다보이는 맞은편 언덕을 너머 모밀밭 두덩에 허연 사람의 그림자가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무엇을 쫓는 모양으로 움직인다.
‘흥! 경환이 저놈이 또 나비를 잡는구나.’
또 좀 내려와 바라볼 때 경환이로 본 그것은 어른이 분명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고 바우는 입가에 업신여기는 웃음을 짓는다. 산을
‘흥, 경환이란 놈이 저의 집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구나.’
그리고 바우는 또 한번 같은 웃음을 웃는다.
바우는 산을 내려와 맞은편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모밀밭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환이 집 머슴으로 본 사람은 남 아닌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농립 농립 : 농립모의 준말. 여름에 농사일을 할 때 쓰는 밀․보리짚 따위로 만든 모자.
을 벗어 들고 나비를 쫓아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그 똑똑치 못한 걸음으로 밭두덩을 지척지척 돌고 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바우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아래를 바라보고 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언덕 모래 비탈을 지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며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지금까지 잠기어 있던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그 아버지가 무척 불쌍하고 정답고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하여서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든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고, 바우는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려는 마음을 가슴 가득히 참으며 언덕 아래 모밀밭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원숭이 발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윌리엄 위마르크 제이콥
william wymark jacobs / English(영국) / 1863~ 1943
비가 내리는 스산한 저녁이었다. 하지만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벽난로에 불을 한껏 피워놓은 집안의 작은 거실은 아늑했다. 이글대는 불빛이 체스를 두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감싸고 있었다.
갑자기 게임을 역전시킬 좋은 수가 생각났다고 여긴 아버지가 왕의 위치를 용감하게 옮겨 놓았다. 벽난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백발의 아내가 그 쓸떼없고 위험한 수를 보고 참견을 하자,
들어 봐라.”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저 바람소리 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화이트 씨가 그것을 자식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딴소리를 했다. “듣고 있어요.아버지.”
아버지의 의도를 눈치챈 듯 아들 허버트가 체스판의 상황을 샅샅이 분석한 뒤 미소를 머금더니 이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장군이요!”
아무래도 그 친구가 오늘밤에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구나.“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처해진 아버지는 여전히 엉뚱한 쪽으로 아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체스 두는 사람 어디 가셨나?”
“이건 최악이군, 그래.”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허버트가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화이트 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길은 온통 진창이야. 이건 정말 최악의 사태야. 집이 떠내려갈 판인데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그래. 신경도 쓰지 않고 있잖아.”
“그만 하세요,여보.” 그의 아내가 남편을 달래주었다.
“아마 이번에는 당신이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몇 번 했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 멈칫하고는 회색 턱수염을 아래로 쓸어내리며 쑥스러운 미소만 지어 보이고 있다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아내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회심의 미소를 목격하고 아버지가 따가운 눈총을 보내며 헛기침을
“이제야 도착했군.”
무거운 발자국 소리에 이어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때 맞춘 손님의 방문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둘러서 문으로 달려간 아버지가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디 투덜거리자 그 소리를 듣고 부인이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동정했다. 화이트 씨가 키가 크고 억세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작고 반짝이는 두 눈에 혈색이 붉은 남자였다. “상사 모리스입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손님이 날씨에 대해서 몇
모리스는 가족들과 악수를 나눈 다음 자신에게 주어진 난로가 의자에 앉더니 화이트 씨가 위스키와 큰 잔을 꺼내고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는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세 번째 잔을 비우자 모리스는 눈을 더욱 반짝거리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주위에 둘러앉은 가족은 먼 곳에서 온 자기 방문객의 말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모리스는 널찍한 어깨를 벌리며 자기가 경험한 야생 세계, 용감무쌍한 행동, 전쟁, 전염병,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십일 년이란 긴 세월이었지.”
보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화이트 씨가 아내와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우리가 헤어질 무렵에는 도매상에서 일하는 꺽다리 젊은이였는데 말이야.지금 이 친구를 한번 보라구.”
“그 동안 많이 다치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화이트 씨의 아내가 공손하게 말했다.
“나도 인도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화이트 씨가 말했다.
둘러봤으면 해서 말이야.”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저 한 번
그 상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더니 빈 잔을 내려놓고 나서 가벼이 한숨을 쉰 뒤 다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인도에 가면 오래된 사원을 둘러볼 수 있고 고행자나 마술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화이트 씨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며칠 전 나에게 말하다가 만 원숭이 발인가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듣고 싶네, 모리스.‘
“아무것도 아니야.” 상사는 요청이 끝나기가 무섭게 잘라 말했다.
“원숭이 발이라구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들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지.”
화이트 씨의 아내가 호기심에 차서 끼어 들었다.
“예, 굳이 말하자면 그저 요술 비슷한 어떤 건데요.”
상사가 무심코 말해버렸다.
둘러앉은 가족 모두 모리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방문객은 아무 생각 없이 빈 잔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가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화이트 씨가 뒤적거리면서 말했다.
보기엔 미이라처럼 말라붙은 그저 작은 발에 불과할 뿐이죠.“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겉으로
그는 자기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어서 내밀어 보였다. 화이트 씨의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지만 아들이 그것을 받아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뭐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 발에는 한 늙은 수행자가 불어놓은 주문의 힘이 들어있죠.”
상사가 말했다. “인도에 대단히 성스러운 수행자 한 사람이 교만에 가득찬 우리가 잘 믿으려 하지 않 는 운명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것을 만들었답니다.
그 운명을 방해할 경우에는 커다란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원숭이 발은 이것을 소유한 세 번째 사람에게까지만 효과를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 가지씩의 소원을 빌 수 있고 그 소원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가 못마땅해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가 매우
“그런가? 그럼 자네도 세 가지 소원을 빌어 보았나?”
화이트씨가 교묘하게 한마디 던졌다.
상사는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화이트 씨에게 기분이 상한 듯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난 이미 세 가지 다 빌었지.”
얼룩 투성이인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럼 정말로 그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나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화이트 씨 부인이 끼어 들었다. “물론이죠.”
상사가 말하고는 자신의 튼튼한 이빨을 유리잔에 부딪쳤다.
“소원을 빈 다른 사람도 있나요?” 부인이 계속 물고 늘어졌다.
“처음 이것을 소유한 한 남자가 세 가지 소원을 이루었지요.”
말을 이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상사가
“그 남자가 빈 두 가지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의 마지막 소원은 죽음이었죠. 그리고 제가 이 발의 새 주인이 된 겁니다.”
상사의 어조는 매우 무거웠으며 모두가 말을 잊은 채 침묵이 흘렀다.
“만일 자네가 세 가지 소원을 이미 이루었다면 이제 자네에게는 이게 필요 없겠군, 모리스.” 드디어 화이트 씨가 말문을 열었다.
“왜 아직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 상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상에 맡기겠네. 사실 이 물건을 팔아 버릴 생각도 했었지. 하지만 정말 팔고 싶지는 않아. 이미 이 요물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 게다가 내 말을 믿고 이것을 사려는 사람도 없을 테지. 사람들은 그저 이상한 이야기로 여길 거야. 생각해보게. 이 물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이 진실인지를 먼저 시험해 본 다음에 돈을 내려고 하지 않겠나.”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만일 자네가 세 가지 소원을 더 빌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화이트 씨가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모르겠네.”
상사가 답했다. “모르겠어.”
그는 그 발을 집어들고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넣어서 흔들어 보더니 갑작스레 불이 있는 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화이트씨가 가벼운 비명 소리를 지르며 잽사게 몸을 나려서 그 발을 낚아챘다.
상사가 엄숙하게 타일렀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태워버리게!”
“모리스, 자네가 이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에게 주면 되지 않는가.”
“자네에게 이걸 줄 수는 없네.” 그 친구가 완고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 그것을 불 위에 던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만일 자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를 탓하지는 말게. 자네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시 그것을 불 위에 던져 버리는 게 좋을 거야.”
화이트 씨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새로운 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을 어떻게 쓰면 되지?”
아라비안 나이트 같군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오른손에 그것을 쥐고 큰 소리로 소원을 빌면 되네. 하지만 내가 한 경고를 절대 잊지 말게.” “꼭
화이트 씨의 부인이 일어나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가면서 말했다.
“내 팔이 네 개가 되도록 한번 빌어보지 그래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주머니에서 그 요물을 꺼내가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상사는 다급해진 얼굴을 하며 그의 팔을 잡았다.
상사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에게 꼭 필요한 경우라면, 현명한 소원을 빌기 바라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화이트 씨가 그것을 주머니에 다시 넣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의자를 제자리로 옮기고 친구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저녁 식사 도중에는 얼마 동안 아무도 그 요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세 명은 자리에 앉아서 그 군인이 인도에서 겪은 경험담을 들으며 완전히 도취되었다.
손님은 마지막 기차 시간에 딱 맞추어서 일어났다. 배웅을 하고 문을 닫으며 허버트가 말했다.
“군대 생활에 대한 얘기의 반은 거짓말이고 나머지 반은 허풍이라고 하던데 그 상사님의 말을 듣고 나니 실감이 나네요. 보아 하니 그 원숭이 발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걸요, 이 물건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보, 모리스에게 그 물건의 대가로 뭘 주었나요?”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아내가
“그냥 몇 푼 쥐어 주었지.” 얼굴이 좀 붉어진 남편이 말했다.
“안 받으려고 하는 걸 내가 억지로 쥐어 주었지. 그 친구가 나한테 그 요물을 버리라고 다시 한번 충고하더군.”
“그의 말이 사실인가봐요.” 허버트가 흥분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행복해지겠네요. 우선 황제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보세요.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고 지내시지 않게 말이죠.”
허버트는 식탁을 따라 도망을 쳤다. 어머니와 아들의 술래잡기가 진행되는 동안 화이트씨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그 말을 꺼내어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의자 덮개를 들고 화이트 씨 부인이 쫓아가자
“사실 내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라도 한 기분이야.”
“어머니는 이 집안이나 깨끗이 치워 달라고 빌면 좋으시겠지요? 그렇죠?” 허버트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쫓아오는 어머니에게 항복하며 말했다. “한 이백 파운드 정도 달라고 빌면 어떨까요?”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자신에게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화이트 씨는 그 부적을 쳐들었다. 사뭇 엄숙한 척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윙크를 받은 후 피아노로 가서 당선자 발표 직전에 쓰는 긴장감 넘치는 효과 음악을 연주했다. “나에게 이백 파운드를 달라.”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애들처럼
화이트씨가 한 마디 한 마디 명확하게 외쳤다.
아들이 그 말을 이어 받아 우렁차게 팡파레를 연주하다가 아버지의 몸서리치는 비명을 듣고 멈추었다. 아내와 아들이 재빨리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이게 움직였어!”
기겁을 하고 원숭이의 발을 바닥에 던져버린 화이트 씨가 혐오스러운 눈빛을 하고 외쳤다.
“내가 소원을 비니까 이게 내 손안에서 뱀처럼 꿈틀거렸단 말이야.”
“그런데 돈은 안 보이는데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허버트가 그 말을 집어 식탁에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돈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당신의 상상이었을 거예요.”
아내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본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어.”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래, 괜찮아. 하여튼 우리가 피해
그들은 다시 벽난로가에 모여 앉았다. 바깥의 바람은 전에 없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화이트 씨는 위층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밤이 되어 노부부가 위층으로 올라갈 때가지 이상하고 침울한 침묵이 세 사람을 내리 눌렀다.
“침대 위에 큰 돈자루가 있을지도 몰라요, 아버지.”
허버트가 밤 인사를 드리며 한 말이다.
“그리고 옷장 속에서 귀신이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돈을 숨기는 걸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헤헤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허버트는 거실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서 죽어가는 불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가 그 불 속에 있는 얼굴들을 보았다. 마지막 얼굴은 너무나 무섭고 마치 원숭이처럼 생겨서 허버트를 놀라세 했다. 그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허버트는 어색하고 불안한 웃음을 터트리며 식탁 위에 있는 물컵에 담긴 물을 구 불 위에 부어 버렸다. 그는 원숭이 발을 집어서 다시 한번 보고는 두려움에 몸을 조금 흠칫하며 손을 옷에 닦고 침실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는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허버트는 어젯밤 자신이 두려움을 느꼈던 것을 떠올리고는 멋쩍게 웃었다. 어제와는 달리 거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선행을 베푸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주름지고 더러운 그 작은 발은 아무렇게나 찬장 위에 던져져 있었다.
“아마 늙은 군인들은 다 그 모양인가 보죠.”
말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화이트 씨의 부인이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지! 요새 세상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뭐라구요? 아니 설사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떻게 이백 파운드가 당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단 말이죠? 말도 안 된다구요.” “갑자기 돈벼락이 아버지 머리 위로 떨어질지도 모르죠.”
허버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모릭스 말이 그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했어. 그러니 실제로 소원인 성취되었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야.”
“예, 그럼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돈에 손대지 마세요.”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허버트가
“그 물건이 아버지를 자린고비로 바꾸어 버릴까봐 걱정되는 걸요.”
화이트 씨의 부인이 웃으면서 문까지 아들을 배웅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큰길로 나간 것을 본 후 남편의 순진함에 어느 정도는 유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는 갑자기 우체부가 문을 두드리자, 혹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가 하고 문으로 달려나갔다가 우체부가 전해준 재봉사의 지급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역시나 하며 퇴역 상사의 술버릇을 다시 한번 입에 올렸다. “하버트가 퇴근 후에는 아마 더 재미있는 말을 할 거예요.”
“믿기 힘들다는 건 알아.” 화이트 씨가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내 손안에서 움직인 것은 분명해, 맹세코 사실이야.”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하지만 그게
“그랬다고 당신이 생각한 거겠죠.” 머리가 흰 부인이 달래듯 말했다.
“생각한 게 아니라 그게 움직였다니깐,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게 정말 움직였단 말이야…… 어쨌건 무슨 상관이야.”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바깥문 밖에 있는 한 남자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남자는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 힘든 듯 망설이면서 집 주위를 한참 동안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백 파운드를 떠올리며 그녀는 낯선 사람의 외모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사람은 고급스러운 옷에 광택이 나는 새 비단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문 쪽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물러서기를 서너 번 반복하더니 드디어 그는 바깥문을 제치고 들어와 정원을 가로질러 집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부인은 손을 뒤로 해서 잽싸게 끈을 풀어 앞치마를 벗은 후 의자의 방석 밑에 팽개쳐 버렸다.
 
때나 입는 옷을 입고 있는 남편의 옷차림에 대해 손님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쉽게 방문객이 용건을 꺼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방문객은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침묵했다.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그녀는 어딘지 불편해하는 낯선 방문객을 거실로 안내했다. 그는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부인은 정돈되지 않은 거실이며 잔디를 깎을
“저는, 저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드디어 그가 말문을 열더니 몸을 구부려 바지 주머니에서 한 조각의 천을 꺼내었다.
“저는 모앤 메긴스 회사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내는 숨이 넘어갈 듯했다.
생긴 건가요? 무슨 문제죠? 뭐예요?”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 “허버트에게 무슨 일이
남편이 끼어들었다.
“여보, 여보, 진정하라고.” 그가 서둘러 아내를 진정시켰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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